<한겨레21>이 맑시즘을 소개했다. 칼 폴라니를 만나 보라는 권유와 함께. 덕분에 맑시즘2009는 졸지에 한겨레21이 권유하는 토론회가 됐다. “<한겨레21>이 추천한 토론회, 맑시즘2009에 와 보시지요?!” ^^! 추천사(?)는 이렇다.
올해로 10번째 행사를 맞는 ‘맑시즘 2009’의 수용 능력은 조금 더 넉넉하다. ‘고장난 자본주의, 대안을 말하다’를 큰 주제로 잡았는데, 주요 세션 가운데 하나로 ‘맑스 vs 케인스 vs 폴라니’가 잡혀 있다. 7월23일부터 26일까지 고려대 서울 안암동 캠퍼스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의 구체적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확정됐다] 참가하려면 사전에 신청을 해야 한다. 02-2271-2395.
어쩌면 인류의 미래를 암울하게 할 지도 모르는 지금의 심각한 경제위기는, '무엇이 대안인가'라는 첨예한 논쟁을 낳았다. 위기의 시대, 과거의 영웅이 부활하기 마련이니! 바로 지금, 경제학의 거인들이 되살아나 토론을 벌이고 있다. 대표적인 거인이 바로 맑스 vs 케인스 아니겠는가? 이런 상황을 우석훈은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위기를 맞으면 이른바 ‘레짐’(체제)이 바뀌게 된다. 첫 번째 위기 때는 케인스의 이론이 있었고, 두 번째 위기 때는 하이에크의 이론이 있었다. 현재의 위기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해선 이론을 내놓은 사람이 없다. 근거가 있건 없건 다들 한마디씩 하고는 있는데, 세계 자본주의가 다음엔 어디로 가야 할지를 말한 이론가 자리가 비어 있는 상황이다.
자리가 비어있으나 역사는 진공을 싫어한다. 때문에 언젠간 어떤 이론이 자리를 잡아 세계를 재편할 테지.
케인스 vs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공황의 원인을 “이윤율 하락 경향” 때문이라고 주장했고 이를 자세히 분석했다. <레프트21>의 기사를 보면,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가들에게 끊임없이 생산을 혁신할 것을 강요한다. 더 효율적인 생산방식으로 값싸게 상품을 공급해야만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
이때 생산의 혁신은 더 값비싸지만 성능이 좋은 기계를 이용해 더 많은 원자재를 노동자가 취급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결국 자본가들의 전체 투자액에서 노동자를 고용하는 비중보다 기계나 원자재를 구입하는 비중이 더욱 커지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노동뿐이므로 자본가들의 전체 투자액에 비하면 새로 창출되는 가치는 점점 줄어드는 것이고, 이는 곧 이윤율의 하락으로 나타난다.
이윤율이 하락하는 것을 감지하는 자본가들은 투자를 줄이는데 이렇게 줄어든 투자는 과잉생산을 낳고 결국 공황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케인스에 대해서는,
자본주의 경제는 불안정한 데다 케인스가 “자본의 한계효율”이라고 표현한 예상 이윤율은 계속 떨어지기 때문에 민간 투자는 저축이 늘어나는 것만큼 늘지 않는다. 그런데 투자가 줄어들면 사람들의 소득이 줄어들고 과잉생산이 발생하고, 결국 저축이 줄어들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한편에는 실업자들이 늘고 다른 한편에는 유휴 설비가 늘어나는 일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케인스의 이런 주장이 뜻하는 바는 불황과 실업이 노동자들의 고임금 때문이 아니라 자본가들이 투자에 나서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회 전체의 투자량이 호황과 불황을 결정짓고, 그 투자량은 “자본의 한계효율”에 따라 결정된다는 케인스의 주장은 마르크스의 주장과 흡사하다.
그런데 한 명의 거인이 더 있다. "자본주의가 고장난 게 확실하다. 그렇다고 마르크스는 이미 실패했으므로 논외고, 지금과 같이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케인즈로의 복귀도 힘들다"며 다른 대안을 찾는 경제학자가 있다. 바로 정태인 씨다. 정태인 씨는 폴라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폴라니는 시장이라는 제도가 인간의 천성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리라는 사실을 30년대에 이미 꿰뚫었다. 그의 이론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재생에너지와 안전한 먹을거리가 그다지 넓지 않은 범위에서 호혜적으로 배분되는 지역 공동체를 능히 그려낼 수 있다. 호혜성(reciprocity)이야말로 우리가 내면 깊숙이 원하고 있는 생명복지(lifare·생명을 뜻하는 life와 복지를 뜻하는 welfare의 합성어로 정태인 교수가 만든 표현)의 원리일 것이다. 전기·가스·철도·우편 등 근거리를 넘어서는 전국적 네트워크, 그리고 교육·의료·주거 등 필수재는 국가가 재분배(redistribution)의 원리에 입각해 최대한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도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녹색 가치는 철두철미하게 관철돼야 한다. 말하자면 ‘녹색 공공성’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