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시즘2011 : 변혁이냐 야만이냐, 7.21(목)~24(일), 고려대학교, 주최_ 다함께
글 앤윈
환상은 언제나 현실을 보여준다. 꿈이란 삶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 해일이 몰아쳤을 때, 전세계의 사람들은 모두 같은 환상을 보았으리라. SF영화에서 많이도 보았던 익숙한 디스토피아.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대항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대한 이야기들 말이다. 그 힘을 생각할 수 있는 건, 우리가 이미 그 디스토피아1를 몇 번씩이고 역사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1945년 히로시마에서
1986년 체르노빌에서
이 책은 1963년 출간되었다. 저자인 커트 보네거트는 미국인이다. 1950년대와 60년대의 미국을 관통하던 건 불안감이었다. 화려하게 경제는 성장했고, 그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는 히스테릭하게 마릴린 먼로를 소비했지만 분명히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히로시마에 무엇이 떨어졌는지, 소련과 미국이 어떻게 군비 경쟁을 하고 있는지. 이 소설은 끝없이 쌓아올리던 그 군비 경쟁의 한 축에서 만들어졌다.
진창에 빠지는 게 힘들다고, 해군 장교는 ‘상대방을 잘 죽이기 위해서’ 진창을 얼려달라고 부탁한다. 닿는대로 다 얼려버리는 얼음조각을 과학자는 ‘별 생각도 없이’ 만들라는 대로 만든다. 그 무기같지도 않은 작고 작은 얼음조각은 독재자를 만들고, 누군가에게는 사람들을 괴롭힐 수 있는 권력을 부여하고, 결국에는 지구를 멸망시키는 데에 성공한다.
이 어처구니 없는 스케일 큰 스토리에 작가는 정신분열적 글쓰기를 시도한다. 화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나간 종교 이야기를 계속 주워섬기며 ‘미친 소리’를 해댄다. 화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역시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니다 .미친 화자가 등장하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미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믿을 수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역시도 미쳐있지 않고서는 이 소설을 읽을 수가 없다. 사실 이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다. 핵폭탄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고 나서도, (심지어는 발전소랍시고 있는 게 땅을 어떻게 만드는지, 사람들을 어떻게 만드는지 지켜보면서도) 대체 에너지랍시고 핵발전소를 짓는 게 녹색 르네상스니 어쩌니 하는 세상이 미친 게 아니면 뭐란 말인가. 이 불안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미치지 않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이 미친 세상에 살아가는 미친 사람들의 광기는 ‘보코논교’라는 종교로 드러난다. 불안한 세계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쉬운 방법은 종교다. 하지만 이 종교는 제대로 된 종교의 외양을 완전히 거부한다. 아예 시작부터 이 외경(外鏡)은 “이 책의 내용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선언하면서 시작한다. 이들이 믿는 건, 실제로는 아무 것도 믿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나 옛 그리스에서 보여지던 ‘광인의 선문답’을 연상시킨다.
광인은 웃음을 만든다. 제정신이 아닌 보코논교 신자들이 서로의 발을 가져다대고 말도 아닌 말을 맥락도 없이 지껄이는 것은 ‘그로테스크’하다. 이 광기는 웃음과 공포의 중간지점에 서 있다. 웃음은 힘이 세다. 무서운 권력을 무장해제시키고 그 이면을 바라보게 하는 힘, 방어적 위치에 서 있던 사람들을 세계의 주인으로 만드는 힘이 바로 ‘웃음’에 있다. 하지만 이 웃음 속에 있는 공포는 바로 새로운 무기, (그러나 전혀 새롭지 않은 무기 – 핵) 아이스 9에 맞닿아 있다. 핵은 온전한 이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인슈타인은 시대의 이성이었고, 과학은 여전히 이성의 총체다. 모든 이성의 ‘첨단’, 그게 바로 가장 광적인 일들을 저질렀다.
그 광포한 이성을 향해 작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빈정대며 실실 ‘쪼개기’를 멈추지 않는다.
종교는 해답을 주지 못한다. 결국 세계는 멸망하고, 아무런 희망도 남아있지 않은 지구 끝에서 작가는 그 종교의 교주를 마주친다. 교주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자멸’에 대해서 여전히 낄낄거리며 글을 쓰고 있다. 여기서 소설 제목은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약하고 여린 고양이 요람은 스스로의 ‘멍청한’ 시스템에 의해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다. 인류는 자멸을 코 앞에 두고 있다.
작가는 인류가 만들어 낸 이 똑똑하고도 멍청한 발명품에 날카로운 경고를 던진 셈이다. 그렇게, 모두 함께 자멸할 생각이냐고. 그리고 그것은 우리 모두가 꾸는 두려운 꿈이기도 하다.
희망을 말하는 과학자
작가는 인류를 신뢰하지 않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발명품을 만들어 낸 두려운 이성이 있다면, 발명품을 만들고 나서 자신의 연구가 만들어 낸 끔찍한 결과에 반전 운동에 나서고 사회주의를 이야기 한 과학자도 있다.
이 귀여운 할아버지 말하는 거 맞다
아인슈타인은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지 4년 후, 사회주의 잡지 <Monthly Review>에 “왜 사회주의인가? (Why Socialism?)” 란 글을 발표했다. 여기서 아인슈타인과 대화를 나눈 그의 손님은 정확히 커트 보네거트와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
“나는 다시 전쟁이 난다면 인류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생각돼, 초국가 조직만이 이런 위험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내 손님은 냉철하게 말했다. "인류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왜 그렇게 반대하십니까?”
한 세기 전만 해도 이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하는 이들이 없었음이 분명하다. 이런 발언은 자신의 평정을 찾는 데 실패하고 성공에 대한 희망조차 잃어버린 이들이 하는 것이다. 이것은 고통스런 고독과 고립의 표현인데, 요즘 많은 사람이 이런 고통을 겪고 있다. 원인이 뭘까? 탈출구는 있는가?”
희망을 잃어버린 미국인에게, ‘죄’를 안은 늙은 과학자는 우리의 사회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사회는 규정되어 있지 않다고 이야기 하면서, 인류에 대해 절망한 이 인류에게 사회주의의 꿈을 이야기 한다.
“문화적 특성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뀔 수 있는 것인 동시에, 상당한 정도까지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결정하는 것이다. 현대 인류학의 원시문화 비교연구 덕분에 우리는 사람의 사회적 행위가 사회를 지배하는 문화적 유형, 조직 형태에 따라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됐다. 사람의 운명을 개선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사람은 인류의 생물학적 특성 때문에 서로를 멸망시키거나 잔인한 자기 파괴적인 운명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저주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악을 제거하는 길은 오직 하나 뿐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것은 사회적 목표를 추구하는 교육체계를 동반한 이른바 사회주의 경제를 확립하는 것이다. 이런 경제에서는 생산수단을 사회 전체가 소유하며 계획된 방식으로 이를 활용한다. 생산을 사회의 필요에 맞추는 계획경제는 일감을 일할 능력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분배할 것이고 모든 사람(남자든 여자든 어린아이든)에게 생활을 보장할 것이다. 개인의 교육은, 현재 우리 사회의 힘과 성공을 칭송하는 대신에 자신의 타고난 능력을 신장하고 동료들에 대한 책임감을 자신 속에 심으려 시도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세상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주 오래 전에 어떤 산타클로스 비슷한 사람이 미리 얘기해 둔 바가 있다.
만국의 노동자여 뭉치소. 님들이 잃을 건 사슬밖에 없소.
커트 보네거트는 2007년에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얼마 전에도 우리는 일본에서 커트 보네거트가 봤던 세상의 일부분을 다시 만나야만 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피폭당했고, 그 무기가 우리 모두를 공멸로 처넣을 수 있다는 게 다시 한 번 분명해졌다.
그렇지만 나는 커트 보네거트가 여기까지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독일에서
일본에서
한국에서
이에 맑시즘2011의 강연 "일본발 핵 재앙 ― 핵 발전은 불가피한가?"와 "마르크스의 생태학"이란 두 강연을 적극 추천하는 바입니다. 이 강연들을 통해 '핵 없는 세상은 가능한지'에 대한 해답과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오늘날 생태위기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답니다.
맑시즘 2011 주제소개 : 환경
일본발 핵 재앙 ― 핵 발전은 불가피한가? 21일 16:50 ~ 18:20
마르크스의 생태학 22일 14:40 ~ 16:00
- 김종환 연세대학교 지구환경연구소 연구원
- 디스토피아(Dystopia)는 유토피아와 반대되는 가상사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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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히로시마에서
1986년 체르노빌에서... |


